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음악/역사 (문단 편집) ==== 고유문 ==== '''입당송(introitus)'''은 역시 [[그레고리오 1세]] 때에 축일 때 [[교황]]의 행렬하던 관행으로부터 유래되었다. 음악은 이중 합창단의 교대식으로 노래하였고, 8세기 말쯤에는 축소되었고, [[사제(성직자)|사제]]가 제대에 도착한 후 시작되었다. 원래는 교송, 시편 한 편 전체, [[기독교/기도문#s-2.1|소영광송]]과 교송의 반복으로 구성되었으나 [[시편]]을 전체에서 한 구절만 부르는 것으로 축소되었다. '''화답송(responsorium)'''은 사도서간 후 이어지는 성가로 독창자가 연단 아래의 층계에 서서 불렀기 때문에 층계송(graduale)라 칭하기도 한다. 원래는 합창 - 시편솔로 - 합창 이라는 형식이었지만 마지막 합창은 생략되었으며 독창으로 시간한 후 합창단이 노래하는 것으로 바뀌였다. 중세시대에는 음절마다 음이 30개가 넘는 부분을 볼 수 있었다. '''[[알렐루야]]'''는 복음환호송으로 불려졌으며, 처음에는 1년 내내 노래되었으나 후에 [[다마소 1세]] [[교황]]이 [[부활]] 시기에만 제한했다가 점점 주일과 축일에도 사용되었고 7세기에는 평일 미사에도 사용되었다. '''봉헌송(Offertorium)'''은 [[카르타고]]에서 [[성 아우구스티누스]]가 빵과 포도주를 제대로 가져올 때 노래하던 관습을 전례에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. 9세기 때 봉헌송은 교송과 시편, 다시 교송의 반복으로 구성되었으나 12세기 때에 시편이 삭제되었고 16세기 [[트리엔트 공의회]] 때 완전히 제거되어서 현재 미사 때는 사용하지 않고 [[레퀴엠]] 미사 때에만 사용한다. '''[[영성체]]송(Communio)'''은 입당송과 같은 교송 - 시편 - 소영광송 - 교송의 반복형식이었으나 11세기 즈음에 시편이 삭제되었고 12세기 때는 봉헌송과 마찬가지로 [[레퀴엠]] 때만 제외하고는 교송만 남았다. 중세 시대 때에 통일적인 형식은 아니었으며 짧고 단순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